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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지환 사회복지학부 22학번

기간
2025_1학기
분류
오사복
유형
학생

사회복지학부 22학번 여지환

인사말

안녕하세요, 사회복지학부 22학번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여지환입니다.

본인의 특징은 무엇인가요?

다들 MBTI 얘기를 하더라고요. 저도 그렇게 시작해 볼게요.
보통 제 첫인상이랑 MBTI가 많이 다르다고 말을 해요. 다들 저보고 E 아니면, F일 것 같다. 이렇게 생각을 많이 하시더라고요. 하지만 저는 INTP입니다.
내향성이라는 게 에너지를 어디서 얻느냐의 차이니까 말을 잘하는 것과 별개인 것 같아요. 그래서 발표나 인터뷰, 토론 같은 건 자신 있는 편이에요. 반면에 사람들과 하는 스몰토크는 한마디도 못 할 정도로 어렵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 지역에 오래 살았어요. 저는 태어나서부터 대구 신천역(경북대 입구역) 근처에서 살았거든요. 초등학생 때 컴퓨터 자격증 시험을 치러 엄마 손을 잡고 경북대에 왔던 기억이 나요. 엄마가 그때 ’이런 대학교에 다녀야 한다. ‘말씀하셨는데, 진짜 다닐 줄은 몰랐네요. 또 중학교 때 ‘포켓몬 고’가 유행했는데, 대학교 주변에 ‘포켓 스탑’이 되게 많았어요. 그래서 그때도 학교를 자주 왔어요.
그런데 제가 좀 길치에요. 경북대에 입학하고 나서도 길을 헷갈린 적이 많았어요. 저는 아직도 학교 도서관과 동성로에서 길을 잃어요. 대구에서 23년을 살았지만, 지도 앱이 없으면 걸어 다닐 수가 없어요. 그래도 길치의 장점을 찾아본다면... 매일 낯선 거리를 다니니까 매일 설렐 수 있는 거죠. 조금 억지 같기도 하지만, “매일이 낯설다. 매일이 설렌다.” 제가 옛날에 쓴 수필 제목이기도 해요.

취미나 관심사가 있나요?

첫 번째 취미 : 글쓰기
저는 글 쓰는 걸 좋아해요. 블로그 같은 일상 기록 글도 쓰고, 제 생각이 많이 담겨있는 수필도 씁니다. 장르는 별로 안 가리긴 하는데, 수필을 제일 많이 쓰는 것 같아요.
수필의 장점은 ‘일상의 맥락화’인 것 같아요.
일상에서 사소하게 지나가는 것들을 포착해서 수필로 풀어나가고 있어요. 단조로운 날도 수필로 기록하면 특별한 하루가 돼요. 특별한 하루가 모이면 특별한 매일이 되고요. 일상을 맥락화해서, 일상을 풍부하게 만든다. 수필의 장점을 이렇게 표현하면 될 것 같아요.
수필 중에서 제가 저를 많이 표현한다고 한 게 ‘퇴고’예요. ‘퇴고하다’는 ‘쓴 글을 고치다’라는 의미예요. 저는 제가 쓴 글이 하루만 지나도 오글거리더라고요. 분명 어제는 괜찮았던 글이었는데 말이에요. 어제 했던 일이 오늘이 되니 너무 부끄럽고, 흑역사 같아요. 퇴고는 글을 완성하기 위해 필수적인 과정인데, 그런 느낌이 싫어서 퇴고가 꺼려졌어요. 하지만 거기서 ‘부끄러움은 사실 성장의 지표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퇴고’는 ‘내가 부끄러워졌다는 것은 그것보다 더 발전했기 때문이다’라는 통찰이 바탕이 되는 글이에요. 글뿐만 아니라, 삶에도 퇴고가 있다고 글이 확장되며 마무리되는데, ‘부끄러워도 하자. 더 나아졌으니까 부끄러운 거지’라고 생각하며 살고 있네요.
그리고 또 제가 경북대 신문란에 글을 하나 올릴 것 같아요. 어떤 글을 쓸지는 아직 모르겠는데, 영화에 관한 글을 쓸 것 같습니다. 새로운 영화를 보고 새로운 글을 쓸지, 아니면 옛날에 영화를 보고 썼던 글을 참고해서 써서 올릴지가 아직 고민입니다.
두 번째 취미 : 독서
그리고 취미라고 하면, 독서도 좋아해요. 독서를 하면 꼭 ‘북적북적’이라는 앱을 활용해서 기록하고 있어요. 최근에는 <텍스트 중심 번역학>이라는 책을 읽었어요.
텍스트 중심 번역학을 설명하자면, 직역과 의역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직역이 말과 단어 중심으로 번역하는 방법이라면 의역은 뉘앙스를 살려 자연스러운 표현으로 번역한 거잖아요? 텍스트 중심 번역학은 이 직역과 의역 사이에 위치한 번역 방법이에요.
좋은 번역은 영어를 한국어로 옮길 때 이 문장의 힘을 그대로 가져오는 번역이 좋은 번역이라고 해요. 문장의 의미가 똑같이 다가와야 한다는 건데, 사실 그게 정말 어렵잖아요. 언어라는 게 ㄱ, ㄴ, ㄷ 같은 기호만 있는 게 아니고 문화, 역사 같은 많은 맥락이 포함된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니 한 언어를 다른 언어로 1 대 1로 치환해서 바꾸는 게 힘들어요. ‘직역, 의역 등 번역 방법은 많지만, 그나마 ‘텍스트 중심 번역’이 가장 문장의 힘을 잘 옮기는 그런 방법이다.’ 이런 내용의 책입니다.
저는 가장 좋은 소통을 텔레파시라고 생각해요. 말을 안 해도 똑같은 생각을 하는 게 제일 좋은 방법인 거죠. 그런데 텔레파시는 거의 불가능하잖아요. 꼭 중간에 무언가 매체를 거쳐야 돼요. 그게 언어일 수도 있고, 음악, 미술이 될 수도 있어요. (그래서 ‘예술’이 소통의 한 수단이 아닐까? 라는 생각에 미술사를 혼자 공부한 적도 있어요.)
하지만 저는 매체를 거치면 거칠수록 뜻이 왜곡된다고 생각해요. 제 생각을 한국어로 말하면 일단 왜곡이 한 번 돼요. 그걸 영어로 번역해서 전달하면 왜곡이 두 번 돼요. 그걸 받아드리는 사람이 판단하고 해석하다 보면 왜곡이 세 번 돼요. 이렇듯 소통 간에는 항상 차이가 생겨나고 그 때문에 오해가 생기죠. 이 차이를 줄이는 게 가장 좋은 번역이 아닐까 싶네요.
제가 또 굉장히 말에 오해를 많이 사는 타입이거든요. 제가 뭐라고 말하면, 애들이 깜짝 놀라요. 말로 인해 오해를 빚었던 일화가 하나 있어요. 제가 군대 가기 전에 친구에게 ‘우리 나중에 밥 한번 먹어야지’라고 했는데 친구들이 놀라더라고요. ‘야 밥은 네가 사야지!’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근데 저도 당연히 제가 산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말했는데, 어디서 오해를 한 건지 모르겠어요. 이런 일화들 때문에, 모든 사람이 텔레파시로 소통하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어요(웃음). 소통의 미숙이라 하니 생각나는 영화도 있네요. ‘이미테이션 게임’이라는 영화인데, 주인공도 저처럼 미숙한 표현 방법 때문에 오해를 많이 받아요.

가치관은 무엇인가요?

저는 균형을 맞추며 사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옛날 고등학교 선생님이 경제학 수업에서 자본주의의 수정 방향에 대해 설명해 주셨어요. 그래프를 보니 국가 중심이었다가, 민간 중심이었다가 그걸 또 보완한 신자유주의가 나오고… 이 그래프를 보며 나아지는 방향으로 가다보니 가운데로, 균형을 맞추며 가는구나라고 느꼈습니다. 더 쉬운 예시로는 헤겔의 변증법으로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정반합에서 정론과 반론이 만나서 합이 나오고 그것에 또 반론이 붙고 그걸 또 보완한 합이 나오고... 균형을 맞춘다는 건 저와 반대되는 구석에서 보완점을 찾는다는 뜻이에요.
저는 많은 부분에서 균형을 맞추려 노력해요. 내향적이지만 사람도 많이 사귀려고 노력하고, 이성적인 사람일지 감성적인 사람일지 고민해요. 균형을 추구하는 게 나아가는 방법이라 생각하기에 늘 노력해요.
저는 그리고 되게 모순적인 사람이에요. 저는 제가 좋아하는 것들을 싫어해요. 저는 감성적인 측면이 있는 사람인데 오글거리는 건 싫어하고요. 책 읽는 걸 좋아하지만 독서 무용론자예요.
인행사에서 배운 ‘투사’라는 개념 기억나세요? 내가 진짜 싫어하는 사람을 마주했다면, 사실은 그 사람에게서 나의 모습을 비쳐 본 것이라고 설명한 학자가 있었어요. 그걸 보고 ‘내가 싫어한 것들이 사실 내가 좋아하는 것일 수도 있겠구나’ 싶었어요. 그래서 저는 싫어하는 사람을 품으려고 해요. 왜냐하면 그 사람은 ‘가장 약한 나’ 일수도 있으니까요. 싫어하는 사람을 품어주는 게 곧 나를 품는 일인 거죠.

공유하고 싶은 경험이 있나요?

글을 쓰는 사람의 재능이 무엇일까 생각해보신 적 있나요? 교양과목 교수님께서 ‘낯설게 하기’의 정도를 조절할 줄 아는 사람이 글에 재능이 있는 사람이라 그랬던 기억이 나요. 예상치 못한 비유를 통해 상대에게 충격 이미지를 주는 게 ‘낯설게 하기’예요. 너무 낯선 표현은 독자가 못 알아듣고, 너무 익숙한 표현은 ‘죽은 표현’이라 불리며 독자가 진부해한다는 역설이 있어요. 재능이 있는 사람은 이걸 본능적으로 조절해서 신박하면서도, 잘 알아들을 수 있는 표현을 사용하는 거죠.
그런데 저는 ‘죽은 경험’들 밖에 없네요. 뻔하고 진부한 경험밖에 없다는 뜻이에요(웃음).
옛날에 ‘월간 공군’ 월간지에 글을 실은 적이 있어요. 제가 여기에 실은 글 중에 ‘마지막 모습이 마지막이 되지 않기를’이라는 글이 있어요. 정말 친했던 친구들인데 안 본 지 오래된 친구들 있잖아요. 그런 친구들과 마지막으로 헤어졌을 때를 생각해 보면, 좀 예기치 못한 마무리를 했던 것 같아요. 막연하게 ‘다음에 또 만날 수 있겠지’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던 거죠. 그런데 군대는 전역이라는 분명한 마침표가 있는 관계잖아요. 그런 점에서 특별함을 느끼고, ‘아, 내가 너무 전역하면 끝이라는 생각에, 소대원들을 차갑게 대한 게 아닐까?’라는 반성과 고백을 담은 글이에요. 글에 **‘감정의 등락도 어떤 인생을 즐기는 묘미 중의 하나가 아닐까’**이렇게 써놨을 거예요. 냉정하고 실리적인 게 작은 기쁨을 즐기는 것보다 항상 나은 인생은 아닌 것 같아요.
그리고 전에 일본 다카마스를 다녀왔어요. 다카마스는 한국인도 잘 없고, 일본 로컬 느낌이 많이 납니다. 다카마스는 우동이 유명한데, 거기서 제가 우동을 연속으로 세 그릇 먹고 체해버렸어요. 그래서 우동이 제일 싫어하는 음식이 됐네요.
해외여행을 성인이 되고서는 이때 처음 갔었거든요. 길만 걸어도 너무 재밌는 거예요. 이게 여행이구나! 싶었어요. 그런데 또 반대로 생각해 보면, 내가 느끼는 한국도 이렇게 설렐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여행을 왔다는 기분 때문에 내가 이렇게 느끼는 거면, 평소 일상에서도 생각을 다르게 하면 이런 기분을 느낄 수 있겠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네요.

인생의 목표가 있나요?

제가 마음속에 열정이 없는 사람이라 생각하기 버거운데요, 요새 소설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긴 합니다. 제목은 ‘자살 지도사’이에요.
세상에 고통 없이 자살하게 되는 버튼이 생긴다면 어떨까요? 소설 속 세상은 이런 버튼이 존재해요. 많은 사람들이 그 버튼을 누를 것입니다. 그래서 국가에서 이 버튼을 누르는 걸 통제하게 됩니다. 적절한 심사를 마친 후에 죽을 만한 사람만 죽을 수 있도록 해주는 공무원도 존재해요. 그 공무원이 ‘자살 지도사’입니다. 자살 버튼과 관련돼서 많은 윤리적 딜레마가 생길거에요. 이런 여러 생각이 교차하는 내용의 소설을 한번 써보고 싶네요.

마무리 하며..

이번 오사복을 하면서 정말 솔직하게 인터뷰한 것 같네요. 오해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읽어주세요.
또 수미상관이 중요하죠. 인터뷰 시작할 때 소개하면서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여지환입니다. ‘라고 했으니, 마지막은 이렇게 마무리할게요.
지금까지 오사복 인터뷰를 한 여지환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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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모습이 마지막이 되지 않기를 https://blog.naver.com/yeojan/2238341920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