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 : 2024년 6월 7일
책제목 : 인간관계론
저자 : 데일카네기
p.29~30
독일군은 어떤 일이 일어난 후 즉시 그에 대한 소송을 제기하거나 비난을 하도록 허용하지 않는다. 억울한 일을 당한 병사는 우선 다음날가지 기다리며 마음을 가라앉힐 기회를 갖는다. 만일 즉시 소송을 제기한다면 오히려 처벌을 받는다. 시민사회에도 그와 같은 법이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푸념을 늘어놓는 부모, 잔소리하는 아내, 꾸짖는 걸 즐기는 고용주, 그리고 모든 일에 대해 남 탓하는 고약한 무리들을 위한 법 말이다.
비판이 아무런 바람직한 결과도 낳지 못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역사적인 사례는 수도 없이 많다. 시어도어 루스벨트와 태프트 사이에 있었던 유명한 논쟁을 예로 들어 보자. 이 논쟁은 공화당을 분열시켰고, 그 결과 민주당의 우드로 윌슨이 대통령이 되었다. 이 논쟁으로 인해 1차 세계대전에 대한 큼지막하고 눈에 띄는 기사들이 신문을 장식하게 되었고, 미국이 참전하면서 역사의 흐름이 바뀌었다. 빠르게 사실들을 검토해 보자. 1908년 루스벨트는 태프트를 차기 대통령으로 만들어 놓고 사자를 잡겠다고 아프리카로 떠났따. 미국에 돌아온 루스벨트는 보수적인 정책을 펼치는 태프트 정부에 대노했다. 그는 태프트를 보수주의자라고 비난하고, 세 번째로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 공화당의 후 보 지명을 받으려 했다. 계획이 실패하자 그는 진보당인 불 무스당을 창당해 공화당을 거의 궤멸 직전까지 몰고 갔다. 그 후 벌어진 대통령 선거에서 태프트와 공화당은 버몬트와 유타 단 두 주에서만 승리를 거두었다. 공화당 역사상 최악의 참패였다.
루스벨트는 태프트를 비난했다. 하지만 태프트가 그 비난을 받아들였을까? 물론 아니다.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태프트는 말했다. “나는 그 이상 잘할 수 없었다.” 누가 비난을 받아야 하는가? 루스벨트? 태프트? 솔직히 모르겠다. 관심도 없다. 내가 지적하고자 하는 요점은 아무리 루스벨트가 온갖 비난을 퍼부어 대더라도 태프트로 하여금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게 만들 수 없었다는 사실이다. 루스벨트의 비난은 오히려 태프트로 하여금 자신을 정당화하게 만드는 원치 않았던 효과만 낳았고, 그가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나는 그 이상 잘할 수 없었다.”라는 말을 반복하게 만들었을 따름이다.